토미타 이사오@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영화 지옥의 묵시록, 무그 신디사이저, 하츠네 미쿠에 대해

챗지피티 번역

토미타 이사오 선생님의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미타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늘 객석에는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많은데, 아마 이사오 토미타 선생님의 이름을 들어보셨거나 그의 음악을 접해보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그러니까 일본인인 우리에게 토미타 이사오는 전자음악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 TV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에 쓰인 그의 음악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토미타 선생님이 작곡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TV 광고 음악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방대한 양의 음악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60년대 후반에 갑자기 전자음악의 세계에 뛰어드셨을 때, 당시에 일본에서는 모그 신시사이저라는 것이 아주 희귀했고 실제로 구입한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청중인 우리 일본인들에게도 그것은 무척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 처음 전자음악에 이끌리게 된 계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 다른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음악 작업을 할 때는… 예를 들어 대규모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하려면 오케스트라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모차르트에서 바그너에 이르는 100년 동안 개선될 대로 개선되어 더 이상 향상시킬 여지가 없어요. 호른, 트럼펫, 바이올린, 플루트 같은 관현악기들은 더 발전시킬 수 없을 정도로 완성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악기라는 측면에서는 바그너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게 없죠. 저는 처음에는 신시사이저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주로 NHK, 특히 라디오 방송 음악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그때 NHK 라디오의 두 채널이 각각 한쪽씩 맡아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했어요. 제가 스무 살 무렵이었습니다. 원래는 모노로만 나가던 방송이 스테레오로 들리게 된 겁니다. 제가 작곡한 음악을 거의 100명 가까운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서 스테레오로 방송해 주니,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너무나 감탄스러웠어요. 하지만… 이건 아마 일본만의 사정일지도 모르지만, 연주자가 4~5명인 음악이나 100명 가까이 되는 음악이나 작곡료에는 큰 차이가 없더군요. 100명짜리 곡을 쓰는 건 정말 힘든데도 말이죠. 어쨌든, 스테레오 방송으로 오케스트라 곡이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소리 구성 요소들, 예를 들어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같은 목관악기나 트럼펫, 호른, 트롬본, 투바 같은 금관악기들 중에서 제가 편곡할 때 음색을 골라 써야만 했습니다. 이걸 미술에 비유하면, 회화나 조각에는 그런 제약이 없잖아요. 캔버스에 금가루를 뿌리든, 재를 갈아 섞든, 뭘 해도 상관없는데, 음악에서는 그게 안 됩니다. 설령 제가 독특한 악기를 하나 발명해서 연주자를 구해본다 해도, 예를 들어 바이올린이라면 프로가 될 때까지 수년간 연습해야 하는데 누가 그걸 해주겠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음색으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즈음에 오케스트라 편곡 작업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모그 신시사이저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미국 버펄로 근처 들판 한가운데서 개발된 거라나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이걸 쓰면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만약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존 발상에서 벗어난 음악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그 신시사이저를 손에 넣었습니다.

당시 그건 모듈식 신시사이저였지요.

맞습니다.

모듈들을 케이블로 연결해야 소리가 났죠. 요즘하고는 달리, 음 하나 내기도 힘든 장치였습니다. 사용 설명서도 딱히 없었지요?

예, 전자 장비라 각 모듈의 기능만 설명한 매뉴얼 한 권이 전부였어요. 지금 나오는 신시사이저들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지정된 소리가 나지만, 제가 샀던 건 전혀 달랐습니다. “모듈들을 케이블로 직접 연결하고, 진폭을 조절한 다음, 네 마음대로 다뤄라” 뭐 이런 식이었죠.

그걸로 뭘 해보고 싶으셨나요? 어떤 소리를 만들고 싶으셨던 거예요?

사실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모그 신시사이저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몰랐어요.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참고할 건 월터(웬디) 카를로스의 《Switched-On Bach》 앨범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모그만으로 연주된 유일한 음반이었거든요. 의지할 곳이 없었지만, 이미 그 장치에 거금을 투자한 뒤였죠. 제가 받는 보수가 원체 많지도 않았고, 대체로 일본 작곡가들이 돈을 많이 못 법니다. AKB48 같은 걸그룹 노래를 만들어서 엄청 팔지 않는 한 말이죠. (웃음) 아무튼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미국에서 고철을 한 트럭 수입해 놓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원래부터 제가 이런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만지작거리며 이것저것 실험하다 보면 가끔 앞길에 한 줄기 빛이 보이더군요. 그러니까 결국 제 끈기와 버티는 힘으로 모그 신시사이저 다루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제가 너무 깊이 빠져 있으니까, 신도 가엾이 여겨 중간중간 작은 힌트를 주시는 것 같았어요.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면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소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완전히 독학으로 깨우쳤습니다. 어느 정도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자, “좋아, 이걸로 앨범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어요. 당시 제 형편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그 기기가 워낙 신기하다 보니… 신시사이저란 게 아직 드물던 때라, 그걸로 TV 광고 음악이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소설 원작 드라마 음악을 만들면 제가 어떤 소리를 내도 감독들은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교적 쉬운 일로 돈을 벌 수도 있었죠… 제가 무슨 얘길 하다 여기까지 왔죠?

당시 선생님께서는 특정 소리를 구현하는 데 공을 들이셨죠.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전자음악은 현대음악의 실험적인 한 구석에서나 쓰이다가 점차 대중음악에도 쓰이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대개는 추상적인 소리 효과만 사용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작품 안에 자연의 소리를 많이 묘사하셨습니다.

맞아요. 그 당시 제가 전위음악들을 들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당시 통념은 무기질적인 전기로는 저런 이상한 소리밖에 못 내고, 감정이 담긴 소리를 만드는 데 전기를 쓰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는 거였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제가 받은 비판도 그거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도 비유했지만 바이올린 소리를 생각해보세요. 말총과 양의 창자를 문질러서 나는 소리잖아요. (지금은 활이나 현에 다른 소재도 쓰이지만요.) 그리고 전기 역시 자연 에너지입니다.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인간이 만들어낸 것처럼, 전기라는 재료로 악기를 만든다고 이상할 게 없어요. 이미 우리 생활에 전기가 흔하니, 전기를 이용한 음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전자음악을 두고 무기질적이고 감정이 없다고 깎아내리다니. 제가 받은 비판이 딱 그거였어요. …우리가 원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웃음) 아닙니다, 계속 듣고 싶을 뿐입니다. 마침 준비한 게 있는데, 방금 말씀하신 휘파람 소리가 서라운드 시스템에서는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로켓 발사 소리 같은 것도 포함해서요.

아, 그러시죠. (무대 스크린을 가리키며) 이거 화면에 나오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기 (서라운드) 패닝 화면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여기 보이는 패너 하나는 병아리입니다. 가운데 것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는 길고양이예요. 그리고 이 패너 하나에는 병아리를 지키려는 어미 새가 있습니다. 병아리를 지키려고 꼬꼬댁대며 울고 있는 게 이겁니다. 자, 그럼 차례로 들어볼까요. 먼저 병아리 소리입니다.

(병아리 짹짹 소리 서라운드로 재생)

이게 다 서라운드로 들리는 거죠?

예. (화면을 보며) 이게 앞쪽 왼쪽, 이게 앞쪽 오른쪽, 이게 뒤쪽 왼쪽, 이게 뒤쪽 오른쪽입니다. 방금 병아리 소리는 이렇게 앞쪽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이동했어요. 다음은 병아리를 덮치는 고양이 소리입니다.

(고양이 야옹 소리 재생)

이게 고양이입니다. 이제 어미 닭 소리 보겠습니다.

(어미 닭 꼬끼오 소리 재생)

셋 다 같이 울리면 이렇게 돼요.

(세 소리 함께 재생, 공간을 이동하며 들림)

휴우, 병아리가 도망쳤네요! (웃음) 자, 이 화면 보시면 그래프가 나옵니다. x축, y축으로 각각 소리의 위치가 표시돼요. 맨 위쪽 선이 병아리고, 이게 고양이, 이게 어미 닭입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는 걸 뜻해요. 말로만 설명하니 복잡하군요. 어쨌든 이렇게 뒤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서라운드 사운드 시연) 이 소프트웨어는 독일제 Nuendo입니다.

이 음악은 처음부터 서라운드용으로 만드신 거군요. 일반 스테레오용이 아니라.

네, 맞습니다.

어떻게 서라운드 사운드에 끌리신 건가요?

한때 전자음악은 소리가 평평하다고들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노로 들어도 바이올린이나 첼로 소리는 깊이가 있는데, 전자음악은 납작하다, 이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반발심에 소리를 아예 뒤로 보내보기로 한 겁니다. 그게 한 가지 이유였고, 또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소리를 들을 때 앞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뒤에서도 들리잖아요. 이렇게 둘러싸는(surround) 소리를 듣는 일상이니, 음악도 그렇게 들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서라운드에 관심을 갖게 된 다른 이유입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에 만든 곡들을 지금 일반 스테레오로 들어보면, 뭔가 눌러놓은 것처럼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게 돼요. 깊이가 있는 쪽이 역시 낫더군요.

(토미타 선생님이 안경을 두 개 겹쳐 쓰자 웃음)

선생님 컴퓨터 화면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안경을 두 개나 쓰고 계시네요.

그러게요. 뭘 하려면 안경 두 개를 겹쳐 써야 하니 이제 인생 끝물이 가까워온 기분입니다. (웃음) 자, 이번 건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이런 식으로 편곡해봤습니다. (모니터를 조작하며) 맞나? 아, 지정을 잘못했군요. 서라운드는 설정이 복잡해서…

원래는 방 한가운데서 듣는 게 제일 이상적인가요?

그렇죠. 하지만 어디서 들어도 재미있게 들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음악 : 토미타 이사오 – 요이치로 카와구치 협업곡 일부)

거의 여신의 목소리 같죠? 이 목소리도 모그 신시사이저로 만든 겁니다. (음향 담당에게) 소리 좀 줄여주세요. 볼륨이요. (음악이 한참 흐른 뒤) 이제 끄세요.

예를 들어, 이런 음색들은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건 그렇게… 보컬 음색은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하루면 됩니다. 오히려 배경에 깔린 삐 소리 같은 효과음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카와구치 씨의 컴퓨터 그래픽 작품 이미지 자체가 지구와 전혀 다른 아득한 행성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표현할 여러 배경음을 만드는 데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 것 같습니다.

원하는 소리를 정하기 위해 녹음을 여러 번 반복하시는 건가요?

지금은 컴퓨터가 있으니 그렇지만, 예전에는 테이프 레코더를 썼어요. 같은 걸 거듭 녹음하면 테이프 히스(hiss) 잡음이 문제였죠. 저는 그걸 이렇게 해결했습니다. 현악기 소리를 녹음할 때 필터도 조금씩 바꾸고 피치도 바꿔서 여러 번 겹녹음했어요. 그러면 소리가 두꺼워지지만, 대신 테이프 잡음이 생기겠죠. 그런데 컴퓨터에는 그런 잡음이 없으니 소리를 두텁게 만들기가 오히려 힘들어요. 현을 켤 때 슥슥거리는 소리가 사실 음에 꽤 임팩트를 줍니다. 저는 그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현 소리를 녹음할 때는 무음 부분에만 노이즈 리덕션을 쓰고, 연주가 나오는 부분에는 일부러 잡음을 남겨둔 채 녹음했습니다. 테이프 히스 잡음을 일부러 섞어서 소리를 다듬은 거죠.

반대로, 요즘처럼 잡음 없는 디지털 환경은 편리하긴 한데 어떻게 느끼시나요?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조금 힘주면 금방 깨질 것처럼. 너무 투명한 느낌이에요.

(옆의 젊은 남성을 가리키며)

아, 이 친구는 칸나 타쿠야라고 합니다. 내가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이 친구 나이가 열아홉이었나? 정말 똑똑한 젊은이예요. 지금은 독립해서 하츠네 미쿠 프로젝트에서 보컬 등 기술적인 부분을 맡아 주고 있습니다.

그럼 한번 들어볼까요? 하츠네 미쿠의 〈은하철도의 밤〉입니다.

내가 아까 이 친구 소개하면서 무슨 얘길 하다 말았죠? 나이 드니 자꾸 잊어버리네.

지금 나오는 게 하츠네 미쿠입니다. 블루레이 디스크라 조금 걸려요. **〈은하철도의 밤〉**이 5번 트랙이네요.

맞아요. 하츠네 미쿠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된 가상 보컬리스트입니다. 음악에 맞춰,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춤추고 노래해요. (칸나 씨를 가리키며) 이 친구가 그 기술적인 부분들을 다 잘 알고 있어요. 공연하려면 지휘자가 꼭 필요합니다.

〈은하철도의 밤〉 틀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하츠네 미쿠가 곧 등장합니다.

(음악 : 하츠네 미쿠 – 〈은하철도의 밤〉 영상과 함께 재생)

이게 바로 **보컬로이드(Vocaloid)**라고 불리는 기술이죠. 목소리를 전자적으로 합성한 건데, 선생님께서 예전에 해오신 작업과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 모그 신시사이저로 했던 걸 현대적으로 구현한 거죠. (음악을 들으며) 그런데 제가 정말 기뻤던 건, 하츠네 미쿠가 실제 오케스트라와 합창, 그리고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함께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이거든요. 마침내 그걸 실현했을 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칸나 씨에게) 보컬 작업 말고 또 뭐 담당했었죠? 아, TAP 말인가. 그 얘기까지 하면 복잡해지니 시간 남으면 합시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한때 모그 신시사이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온갖 소리를 만들어냈고, 한편으론 오케스트라 곡을 쓰면서 전자음악과 관현악의 융합 작업도 해왔습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 프로젝트에도 큰 흥미를 느껴서 하게 됐습니다.

이 프로젝트 전에 예전에 ‘Sound Cloud’ 공연들을 하셨었지요. 요즘 SoundCloud라 하면 온라인 음원 플랫폼을 떠올리지만, 훨씬 이전에 선생님께서는 “토미타 Sound Cloud”라는 제목으로 3D 오디오 공연을 여셨잖아요.

네.

그 공연들을 전세계 여러 곳에서 하셨지요?

첫 공연은 오스트리아 린츠의 도나우강변에서 열렸습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이었는데, 그 행사가 막 시작할 무렵이라 1984년이었나… 아, 1984년이었네요.

도나우강변에서 공연하셨을 때 관객이 8만 명이었다면서요?

네, 정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3D 오디오로 제 공연을 들으러 와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모든 작업을 혼자 다 해오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포함해, 요즘은 혼자 컴퓨터로 음악 만드는 게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선생님은 집에서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음악인의 개척자 격이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혼자 하시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음악이란 원래 합주라 같이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함께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생깁니다. 참고할 만한 전례도 없고, 방향을 알려줄 단서도 없었어요. 남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길도 없고, 그러다 보니 지치죠. 약속도 서로 맞춰야 하고요. 이를테면 새벽 2시에 잠이 깨서 다시 잠이 안 오면, 혼자면 그냥 작업실에 내려가 일하면 되지만, 같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럴 순 없죠. 사실 애초부터 혼자 해야지 했던 건 아닌데, 하다 보니 다들 도망가버려서 어쩔 수 없이 혼자 하게 됐습니다. 혼자 작업하는 게… 지금이야 전자음악 하는 사람이 많으니 괜찮지만, 제가 외롭게 혼자 하던 시절엔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고 자주 고민했습니다. 아마 운동선수들도 비슷한 기분일 겁니다. 특히 당시 저는 가족이 있었고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더 그랬어요. 아들딸 생각을 하면, 제가 많이 힘들게 했죠.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사주지도 못했고요.

아이들이 아버지 일을 이해했나요?

아마 못 했을 겁니다. (웃음) 오늘 저는 여기서 제가 해온, 기존 음악 틀에서 벗어난 작업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제가 해온 방식이 정답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작업은 아직도 진행형이에요. 제가 뭔가 하고 있는 걸 보고 누군가 “아, 쟤가 저렇게 하네? 그럼 나도 해봐야지. 나는 저보다 더 나가서 완전히 새로운 걸 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칸나 씨에게) 어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이 친구가 참 겸손하죠. 어쨌든, 저는 항상 제 작업이 아직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고 느낍니다.

당시 RCA 레코드… 일본 음반사들은 제 앨범을 아무데서도 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Snowflakes Are Dancing》 말씀인가요?

예, 그거요. 제가 1년 4개월이나 들여 만들었거든요. 비싼 모그뿐 아니라 프로 수준의 테이프 레코더와 믹서도 필요해서 다 샀습니다. 그러려면 그동안 들어오던 안정적인 일거리들을 다 거절해야만 했어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비슷한 일 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친한 감독이 전화를 걸어 “혁신적인 영화를 찍는데 방금 회의에서 당신한테 음악 맡기기로 했다네!” 이러면, 저는 전화 받으면서도 속으로 아득해집니다. 그래서 “요새 제가 좀 바빠서요” 하고 대답해요. 그러면 “뭘 하고 있는데?” 하고 묻죠. “전자음악 좀 하고 있어서요” 하면, “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다음에 부탁하죠 뭐” 이렇게 됩니다. 두 번 그렇게 넘어가면 세 번째는 없어요.

정말 그렇죠.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너무 불안해져요. 지금도 가끔 꿈을 꾸는데, 칠흑 같은 바다에 저 혼자 배를 저어 나가는 꿈입니다. 배웅 나온 친구들 얼굴이 깜깜한 물가에 보이다가 하나둘 사라져요. 그런 꿈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다 미국 RCA에서 음반을 내주겠다고 해주고, 앨범이 빌보드 차트까지 오르니까, 그야말로 꿈만 같았죠.

미국 RCA에 제안하실 때 뭔가 계획이 있으셨나요?

당시 일본 빅터가 RCA와 기술 제휴를 맺고 있었는데, RCA 미국 본사의 디렉터나 간부와 연줄이 있는 일본 분이 계셨어요. 그분 도움을 받아 적절한 분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이미 선생님 음악을 들어본 상태였겠지요?

예, 물론 테이프를 보내놨으니까요. 그런데 70년대만 해도 미국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일본의 이미지는 “일본에 컬러 텔레비전은 있나요?” 이런 수준이었어요.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고 보는 거죠.

그렇군요.

“집 냉장고에 자동 성에 제거 장치가 달려 있나요?” 이런 것도 물었어요. 옛날 냉장고는 성에 끼면 꺼내서 제거해야 했는데 지금은 다 자동이잖아요. 뭐 그런 식이었습니다.

70년대 중반이면 가전제품은 일본이 미국보다 앞섰을 텐데요?

제 음반이 나온 게 70년대 중반이지만, 제가 미국에 들고 간 건 1970년 무렵이었어요. 아마도 문화적으로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나라에서 모그 신시사이저 음악을 가져온 사람이 있으니 흥미롭게 봐준 거겠죠. 미국 사람들이 오히려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일본 음반사들은 설득하기 더 어려웠어요.

일본 음반사들은 너무 보수적이지요.

맞아요. 요약하자면, 전례로 히트 친 곡을 기반으로 결정하거든요. 그런데 전에 없던 신시사이저 음악이 나오니, 음반 가게에 피해 줄까 봐 다들 꺼리는 거죠. 음악 담당자는 “아 이거 너무 좋은데! 내가 밀어볼게” 했다가도, 영업 쪽에서 가게들을 설득을 못 해서 “죄송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들고 미국에 가 운 좋게 된 거지, 제가 무슨 정치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잘 돼서 다행이에요.

스티비 원더, 코폴라 감독과도 작업하신 적 있지요…

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말씀인가요.

코폴라 감독이 선생님께 영화 음악을 맡기고 싶어 했었죠.

예, 그게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이었습니다. 근데 그 영화가 Warner사 작품이었는데, RCA 쪽에서 “토미타는 우리랑 계약돼 있다”고 한 거예요.

계약 때문에 무산되신 건가요.

촬영지 필리핀까지 가서 거의 할 뻔했는데, 결국 안 된다고 통보받아서 못 했습니다.

선생님이 음악을 맡으셨다면 서라운드로 정말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이 나왔을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웃음) 제가 만든 〈행성(The Planets)〉 음반이 그때 이미 나와 있었는데, 그걸 코폴라 감독에게 들려드렸더니 딱 이런 느낌으로 사운드트랙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럼 〈행성〉을 잠깐 들어볼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어느 부분을 들려드릴까요? 로켓 발사 부분이요. 시간 되나요?

네, 아직 시간 있습니다. 그럼 첫 트랙 **〈화성〉**을 틀까요?

여기 교신하는 무전음들이 나오죠.

(음악 : 토미타 이사오 – 〈화성, 전쟁을 부르는 자〉 5.1 서라운드로 재생)

5.1 서라운드라 그런지 스피커로 들으니 정말 박력이 있네요.

저는 이 곡 작업할 때 무전기를 사용했습니다. 요즘 무전기는 성능이 좋아서 소리가 깨끗한데, 일부러 구형 무전기를 썼어요. 후지산 5합목까지 차로 올라가서, 거기서 전파를 쏘고 아래 공공도로에서 수신하면서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성능 떨어지는 무전기를 쓰면 송신한 소리에 여러 잡음이 끼거든요. 저는 그 잡음이 필요해서 그런 시도를 한 겁니다. 근데 제가 몰랐던 게, 후지산 인근에 자위대 기지가 있더군요. 그 근처에선 전파를 발신하면 안 된대요. 제가 쏜 이상한 전파를 듣고 “이게 어느 나라 거지? 혹시 우주에서 오는 신호인가?” 이래서 한바탕 난리가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아무 일 없었습니다. (웃음)

지금 들으신 곡은 홀스트의 **〈행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방금 얘기해주신 것처럼 무전기 잡음 같은 구체음도 많이 쓰셨어요. 저는 선생님 작품 중 이 〈행성〉과, 요코 타다노리 씨의 커버 아트로 유명한 《버뮤다 트라이앵글》 앨범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선생님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을 신시사이저로 재해석하면서도 여러 가지 소리를 과감히 도입하는 점이 늘 흥미롭습니다.

음반사라는 데가… **《Snowflakes Are Dancing》**이 잘 되니까 다음 앨범도 같은 걸 원했거든요. 제 앨범을 맡았던 피터 먼브즈라는 디렉터가 원래 《Switched-On Bach》을 성공시킨 사람인데, 그 콜롬비아 레이블을 떠나 RCA로 옮겨와 제 앨범을 담당하게 됐어요. 그러니 바흐 같은 바로크 음반으로 재미 본 경험을 잊지 못했던 거죠. 비슷한 시리즈를 하자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저도 딱히 반대하진 않아서, 그 뒤로도 기꺼이 클래식 편곡 시리즈를 이어갔습니다.

그 무전기 잡음 같은 구체음은 원래부터 음악에 넣고 싶으셨던 건가요?

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노이즈는 음악에서 배척당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잡음이… 소리를 송신하면 여러 잡음이 섞이는데, 저는 그 소리가 꽤 마음에 들어요.

선생님은 늘 노이즈를 하나의 소리로서 의식해오신 것 같은데, 일반적인 실험음악이나 노이즈 음악과는 시각이 좀 다르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의식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죠. 제가 〈행성〉 작업할 때쯤 한창 일에 몰두해 있었는데, 컨셉이 “우주 어딘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을 생중계로 들려주자”는 거였습니다. 음질 자체, 음색 자체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장 생중계에는 이런저런 잡음이 끼잖아요. 약간의 공연 실황 같은 느낌. 그걸 만들고 싶었어요.

우주는 선생님의 중심 테마 중 하나죠. 그런데 선생님 작품 속 우주는 저 먼 우주만이 아니라, 전쟁 중 라디오에서 들으신 비교적 가까운 주변의 소리도 포함하는 듯합니다.

글쎄요, 그런 건 깊이 생각 안 합니다. 다만 마음이 어린애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건 있어요. 제가 올해 82살인데, 음악을 하는 데는 이렇게 아이 같은 멘탈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소리 가지고 논다는 느낌으로요?

예, 노는 거죠. 연주자를 영어로 player라고 하잖아요. 결국 play, 놀이인 겁니다.

예전에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들은 건데, 사람들이 선생님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고도 했다면서요?

그 말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음악이 아니니 뭐니,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라느니. 뭐, 음악 아니면 음악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어요? 꼭 음악이어야 할 필요는 없죠.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그 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제 메시지가 청자에게 전혀 안 가닿고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만 들리면 그게 “제대로 아닌 음악”이겠죠. 하지만 듣는 분들이 뭔가를 느끼신다면, 그건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선생님은 젊은 분들한테 특별히 해줄 말씀이 없다고 늘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음악을 계속 하려는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전쟁 때문에 음악 기초를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마 다케미츠 토오루 선생도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그분 음악은 예술성이 뛰어나지만 일반 음악과는 좀 다르게 들리죠.

네, 맞아요.

제 음악은 좀 더 대중음악에 가까운 편이고, 그냥 제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솟아오르는 대로 했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뭔가 혁신적인 걸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고, 그냥 제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이에요. 다만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늘 몹시 신경이 쓰여서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어두운 바다에서 혼자 배 젓는 꿈 이야기를 들으니 결국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계속 나아가는 힘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음악으로 새로운 걸 해보려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미 있는 걸 파고드는 쪽이 심리적으로 안전하긴 해요.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이미 다져진 고전 같은 길로 가면 목적지도 알고 결과도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들을 조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진행 중인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걸 말씀드리면 좋을까요?

앞으로 하실 작업들에 대해서요. 계획하고 계신 것들 좀 알려주세요.

음… 아직은 아무 것도 말씀드릴 단계가 못 됩니다.

하나도요?

힘이 예전 같지 않아서 말이에요. 예전엔 며칠 밤을 새도 멀쩡하다고 자랑했는데, 이제 80 넘으니 무리했다간 금방 폐렴에 걸려요. 나이 먹으면 쉽게 아프네요.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하려고 합니다. 일단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꼭 완성해보고 싶거든요.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죠. 그래도 아직 호기심은 잃지 않았으니 계속 작업하긴 할 겁니다. 더 늙고 쇠약해져도요.

매니저 없이 스케줄을 직접 잡으신다는 얘길 듣고 놀랐습니다. 모든 연락을 직접 하신다니 대단하세요.

앞으로 이 방식이 표준이 될 거라고 저는 오히려 생각해요. 왜냐하면 음악이라는 게 원래… 일본에도 옛날에 한 명이 비파 들고 전국 떠돌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있었고, 유럽에도 길거리에서 몇 명이 연주하는 악사들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인원이 늘어나면 의견 차이가 생기고 그게 불안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니 그냥 혼자 하는 게 낫죠.

다만 그렇게 하시려면 한밤중에 혼자 배 젓는 꿈도 각오해야겠습니다.

하하, 그렇긴 하죠.

결론을 억지로 내자면, 선생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혼자 해라, 인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그렇네요. 혼자 해보라, 입니다. (웃음) 어제도 저는 오케스트라와 작업했습니다. 〈겐지 이야기〉 콘서트를 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합주하니 또 굉장한 감동이더군요. 오케스트라 악보라는 게요, 저는 원래 관현악 작곡으로 출발했는데, 신시사이저 작업은 악보를 써도 각 소리를 일일이 만들어야 나오지만, 오케스트라는 악보만 딱 주면 음악이 술술 흘러나옵니다. 참 효율적이에요, 서양 음악 문명이. 누가 이런 걸 생각해냈나 몰라요. 보지도 못한 곡을 척척 보고 연주하니 말입니다.

정말 효율적이네요.

집에 돌아오면서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감탄했어요.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어서, 여기서 강연을 마치고 관객 분들의 질문을 몇 개 받아보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손들어 주세요.

(객석 질의응답)

안녕하세요, 토미타 선생님. 궁금한 게, 언제부터 이펙터 같은 효과음을 도입하셨나요?

저는 그걸 따로 “이펙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대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음악적 소리와 효과음을 구분하지 않아요. 저에겐 전부 그냥 똑같이 음악입니다. 답변이 되었나요?

어느 정도는요. 혹시 Eventide H910, H949 같은 랙 장비들을 모그 신시사이저와 함께 쓰신 건가요? 아니면 모그 자체 내장 효과만으로 작업하신 건가요? 예를 들어 딜레이 같은 거요.

그 “9-10”이라는 건… 모듈 이름인가요?

네, 랙으로 된 장치요. 혹시 선생님 모그에 그런 이펙트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요.

내장 딜레이 기능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테이프로 딜레이 효과를 냈습니다. 요즘이야 딜레이, 리버브 다 있지만 그땐 없었거든요. 녹음 헤드랑 재생 헤드 이용해서 지연을 만들었죠. 모그로 말하자면, 핑크 노이즈랑 화이트 노이즈 정도가 효과음이라면 효과음이었고, 나머지는 다 뚜렷한 음높이가 있어서 음악으로 쓸 수 있는 소리들이었어요. 이게 답이 됐나 모르겠네요, (웃음).

충분합니다. 빨리 하나만 더 질문드릴게요. 월터(웬디) 카를로스 분을 직접 만나본 적 있으세요?

아뇨. 그 시절에는 엔화 가치가 너무 낮아서, 해외 나가는 데 돈이 엄청 들었습니다. 제가 테이프를 들고 RCA에 찾아간 게 겨우였죠. 그래서 그분을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어요. 뭐… 악의는 없지만, 굳이 월터 카를로스를 만나 얻을 게 있다고 생각진 않았습니다. 직접 만나 조언을 구해야 할 만큼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근데 저는 **모그 박사(로버트 모그)**를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참 훌륭한 분이었어요. 조금도 거드름 피우는 데 없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죠. 클래식 음악 생각해보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들은 다 세상에 없고, 스트라디바리우스나 스타인웨이처럼 훌륭한 악기를 만든 분들도 이미 다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니 그분들을 만나 “어떻게 해야 피아노에서 최고의 소리를 얻나요, 바이올린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을 수가 없죠. 그런데 모그 박사는 제 앞에 살아 계셨어요! 창조주를 직접 만난 느낌이랄까요. 정말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토미타 선생님.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선생님의 **〈아라베스크 1번〉**이에요. 지금 여기서 다 같이 들어봐도 될까요?

오, **〈아라베스크〉**요? CD 가져오셨나요? 괜찮으시다면 서라운드로 한번 들어보시지요.

(음악 : 토미타 이사오 – 〈아라베스크 1번〉 서라운드로 재생, 관객 박수)

감사합니다. 방금 남자 말소리 같은 게 들렸죠? 제가 저 소리를 말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모그로 “파 피 푸 페 포” 정도 내게 하는 게 고작이었고, 보컬 음도 “아”, “오”, “에” 정도만 흉내 낼 수 있었어요. (옆의 칸나 씨 가리키며) 이 친구가 하츠네 미쿠를 말하게 만들었죠. 저보다 먼저 해냈습니다.

서양 곡, 이를테면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같은 걸 작업하실 때, 뭔가 의식적으로 접근하셨나요? 아니면 그냥 그 곡을 좋아해서 만들고 싶다는 직관으로 하신 건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Switched-On Bach》에 대한 경쟁심이 있었고 다른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바흐 음악이 전형적인 독일 음악의 본보기라면, 드뷔시 곡들은 동양, 특히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드뷔시가 파리 박람회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고 감명을 받았거든요. 아시아인인 저도 그의 피아노곡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뷔시 곡들을 선택해 작업하게 된 겁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 쇤베르크나 퍼시케티 같은 분들이 쓴 **《20세기 화성법》**이나 《화성의 구조적 기능》 같은 책을 참고하신 건가 궁금했습니다. 그런 이론을 염두에 두셨나요?

관심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배우진 않았습니다. 제가 나온 게이오대학에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당돌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레 지식이 넓어지더군요. 다케미츠 토오루 선생도 미군 부대에 가서 그때그때 최신 레코드를 잔뜩 들으며 음악 지식을 쌓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자연스레 얻은 셈입니다. 예를 들어 대위법이라는 건 하나의 선율을 만든 뒤 대선율을 붙여서 뭔가를 표현하는 기술이잖아요. 그 자체가 예술입니다. 그러면서 두 선율이 조화를 이루려면 화성이 제대로 짜여야 하는데, 그 화성이라는 건 피아노 건반으로 누르면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사실 무소르그스키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보통은 차이콥스키처럼 정석대로 하는데, 무소르그스키는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독특하게 화음을 쌓았어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소르그스키는 음악 이론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아마추어였대요. 어떤 친구와 교수님들은 저한테 “그런 거 공부해서 뭐하냐”고도 했습니다. 우리 학교엔 음악과가 없었지만 음악 좋아하는 교수님들이 계셨거든요. 제 생각엔, 무소르그스키 음악은 음악 이론적으로 보면 “정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참 재미있어요! 그 화음들 좀 보세요. 그래서 제가 직접 피아노로 무소르그스키 곡들을 쳐보고 그의 화성을 파헤쳐가며 독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아, 그리고 재즈! 재즈 화성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글렌 밀러의 곡은 특히 제 가슴을 울려요. 한눈 팔며 들으면 그 화음들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멋지게 쌓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만 테이프로 녹음해서 아주 짧게 루프시킨 다음 계속 들으며 그 화음을 분석했습니다. 그렇게 배웠어요. 덧붙이자면, 드뷔시 화성도 대단히 매력적이었죠. 드뷔시 악보는 구할 수 있으니 사서 보면서 지식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론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음악 대학에 안 갔습니다. 공부 안 하면 작곡 못 한다는 게 당시엔 정설이었고, 그런 학교엔 아주 완고한 선생들 투성이였죠. 너무 거기에 깊이 빠져들긴 싫더라고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첫 모그 신시사이저로 음악을 만들 때 무척 어려움이 많으셨는데, 기술이 발전한 후에 예전에 낸 음반들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 있나요? 아니면 그것들도 역사 속의 한 작품으로 두시나요?

그 생각 했습니다. 음반사는 달라졌지만 제 옛 작품들을 많이 다시 만들었어요. **〈행성〉**도 다시 만들었죠. 지금 들어보면 워낙 초기 작품이라 제가 만든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들이 보여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꼭 고쳐보고 싶어서 리메이크했습니다. 이건 드뷔시 음악이고, 이건 〈행성〉인데, 아마 저쪽에서 판매 중일 텐데… (아, 이건 쓸데없는 소리였네요. 웃음)

정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뻔한 부탁일 수 있지만, 선생님의 《Snowflakes Are Dancing》 앨범 중 **〈달빛〉**을 다 같이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말씀 들으니 제가 더 기쁜걸요. 예전에 스티비 원더 씨가 일본에 왔을 때 “눈 구경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니가타인가 후쿠이인가 데려가려고 했죠. 근데 그 근처엔 일본식 료칸(여관)만 있어서, 시각장애가 있는 스티비 씨가 계시기에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더라고요. 하필이면 그날 폭설이 내려 기차가 끊겨버려서 끝내 함께 눈 구경을 못 갔습니다. 그래도 스티비 씨는 일본에서 눈을 꼭 느껴보고 싶어 했어요.

제가 작곡한 **〈겐지 이야기〉**에도 눈 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곡이에요. 그 부분에 눈을 묘사한 장면이 있죠. 이 곡은 전부 오케스트라를 위해 썼고, 신시사이저도 일부 쓰긴 했지만 거의 90명 가까운 관현악단을 썼습니다.

그럼 《Snowflakes Are Dancing》 들어보겠습니다. 요청 들어온 곡이니까요.

(음악 : 토미타 이사오 – 《Snowflakes Are Dancing》 앨범 중 발췌곡들 서라운드 재생)

와, 우리 이 곡들 다 들어버리면 안 되나요! (웃음)

(음악 : 토미타 이사오 – 〈Snowflakes Are Dancing〉 엔딩)

자,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것으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함께해주신 토미타 이사오 선생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청중 박수)